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복 입은 남자 (문단 편집) == 조선 남자를 그린 그림 == 1617년 정도에 [[벨기에]] [[앤트워프]]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망건과 도포를 걸친 모습이 특징이다. 1617년 즈음이라면, 흔히 조선에 상륙한 최초의 유럽인으로 알려진 [[박연(조선귀화인)|박연]]이 조선에 상륙은 커녕 태어나기도 전인 때이다.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이 작품을 처음 수집하고 조사하던 도중 사진 구석에 조그마한 [[범선]]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. 이 배는 위의 작품 사진에서도 찾아볼수 있다. 그림 왼쪽 중단부를 자세히 보면 그리다 만 배가 희미하게 보인다. 이를 바탕으로 "바다를 건너서 온 인물이 아닐까?"하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. 그리고 위의 인물이 누구를 그린 것인지 조사하던 도중 해당 그림속 복장이 [[한복]]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《한복 입은 남자(Man in Korean Costume)》인 것이다. 당시 조선과 유럽은 교류가 없었으므로 루벤스가 어떻게 조선인을 모델로 작품을 그릴 수 있었는지 의문이지만 제대로 된 연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. 이 사람이 [[임진왜란]] 당시 [[일본]]에 끌려갔다가 다시 유럽으로 팔려간 노예라는 주장이 있는데, 그렇게 보기엔 너무 옷차림새가 단정하고 풍채가 당당하다. 1592년에 발발한 [[임진왜란]]과 시기적으로 근접하고, 당시 노예시세가 하락했다고 할 정도로 조선인 노예가 많이 풀렸기 때문에 일부가 어떻게 흘러흘러 유럽으로 건너갔을 것이란 추정이다. 이와 관련해서 가장 유력하게 언급되는 인물이 '''[[안토니오 꼬레아]]'''이다. 오세영의 소설 《[[베니스의 개성상인]]》의 모델이기도 하지만, [[부산대학교]] 사학과 곽차섭 교수의 책 《조선청년 안토니오 꼬레아 루벤스를 만나다》에서도 이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3&oid=020&aid=0000224105|가설]]을 택하고 있다. 곽차섭 교수는 이 그림의 인물은 [[철릭]]을 입은 조선인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. 이 주장에 따르면 《한복 입은 남자》의 모델은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뒤 피렌체 상인 카를레티가 구매해서 로마로 데려온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것이다. 그러나 지명숙과 왈라벤은 노예로 팔려와 유럽에 온 한국인이 그와 같은 벼슬아치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임을 지적한다. 그보다는 일본에서 일했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무역사무소 소장 자크 스펙스(Jacques Specx; 1585 ~ 1652)가 고용했던 한국인 수종(隨從)이 1615년경 로마가 아닌 네덜란드에 온 것을 스케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. 그 외에 다른 가설로는 명나라나 일본에서 활동한 [[예수회]] 선교사가 보내온 선교 보고서에 조선인의 그림이 실렸고 루벤스는 이를 묘사한 것이라는 설과, 아예 '''이 옷이 한복이 아니라''' [[명나라]]에서 돌아온 선교사의 [[한푸|명나라 복식]]을 보고 드로잉한 그림이라는 설도 존재한다.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주장으로는 루벤스가 외교관을 했다는 이력을 들어 그가 아시아 지역의 외교를 다녀오고 난 후 아시아 의상에 깊은 감명을 얻어 자신의 그림에 아시아적 요소를 넣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. 실제로 위의 드로잉을 전시하고 있는 미국의 전시관에서 큐레이터는 작품을 소개할 때 이러한 주장을 인용하여 설명한다. 자신의 아시아 외교의 성과를 축하하기 위해, 기념으로 아시아 의상을 입힌 유럽의 제사장 및 해외 대사를 그렸다는 것이다. 다른 드로잉 작품으로는 중국 의상을 입힌 작품이 있는데 당시 유럽의 제사장 모습과 비슷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. 이는 평소 루벤스가 해외 문화에 큰 관심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